2016년 가을, 강남 도산대로의 텐프로에서 새끼마담으로 첫 출근을 했다.

그날 배운 것은 술 따르는 법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마만큼을 비워둬야 하는지, 그것부터 배운다. 나는 그날 병을 한 번도 들지 못했다.

새끼마담이라는 말도 그날 처음 들었다.

문을 열면 낮 냄새가 난다

오후 다섯 시 반이었다.

도산대로는 그 시간에 제일 조용하다. 점심 장사가 끝났고 저녁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가로수 그림자가 길게 누워 있었다. 발레파킹 서는 사람들이 아직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몇 시간 뒤에 이 거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때의 나는 몰랐다.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열었더니 조명이 절반만 켜져 있었다.

세제 냄새와 마른 수건 냄새가 났다. 밤의 냄새일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아니었다. 낮이 끝나가는 냄새였다.

유리잔이 줄을 맞춰 엎어져 있었다. 물기 자국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 매일 저걸 닦아서 저 자리에 세워둔다는 뜻이었다. 그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화려한 걸 볼 줄 알고 왔는데, 제일 먼저 본 것이 반복이었다.

나는 가방을 든 채로 한참 서 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뭘 하면 안 되는지를 몰라서였다.

새끼마담 — 말 그대로 마담의 새끼

"오늘부터 새끼마담이야."

언니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되물었다.

"말 그대로야. 마담의 새끼."

방은 여러 개인데 마담은 하나다. 그래서 언니는 모든 방에 있을 수가 없다. 못 가는 방을 대신 맡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게 나였다.

내가 들어가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아가씨가 맞춰지기 전, 그 사이. 손님은 이미 앉아 있는데 초이스는 아직인 시간. 그 방은 비어 있으면 안 된다.

"그 시간에 방이 심심하면 그날 밤이 다 심심해져."

내가 할 일은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었다. 분위기를 만들고, 필요한 걸 먼저 챙기고, 말이 끊기지 않게 하고. 나중에 나는 그걸 이렇게 설명하게 됐다. 방 하나에 붙는 맞춤 비서 같은 거라고.

다만 그날은 첫날이었다. 언니는 나를 혼자 보내지 않았다. 반 걸음 뒤에 세워두고 자기가 먼저 들어갔다.

처음엔 그게 배려인 줄 알았다. 아직 아무것도 못 하니까 봐주는 거라고.

나중에 알았다. 반 걸음 뒤는 배우기에 제일 좋은 자리다. 앞에 서면 손님 얼굴만 보이고, 뒤에 서면 방 전체가 보인다.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누가 아무도 안 보고 있는지까지.

종이 한 장

언니는 술 따르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종이 한 장을 줬다.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옆에 한 줄씩 붙어 있었다.

아아 먼저 셋팅.

명품 칭찬해주면 기분 좋아한다.

먼저 말 걸지 않으면 편해한다.

아내 이야기가 나오면 오래 앉아 있는다.

"외워."

그게 첫 지시였다. 나는 그게 응대 요령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건 손님 목록이 아니었다. 이 방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있고 싶은지를 적어둔 목록이었다. 밖에서 무슨 일을 하든, 몇 시간 동안은 말하지 않아도 아아가 먼저 나와 있는 사람. 새로 산 걸 알아봐 주는 사람 앞에 앉는 사람. 그렇게만 존재해도 되는 자리.

종이를 외우는 데는 한 시간이 걸렸다. 사람을 외우는 데는 훨씬 오래 걸렸다.

문이 열리는 시간

다섯 시부터 준비가 시작됐다.

잔을 닦고, 얼음을 채우고, 방마다 돌면서 불을 켜다. 손이 비면 그냥 서 있었다. 서 있는 게 제일 어려웠다. 서 있는 데에도 자세가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여섯 시가 가까워지니까 밖이 먼저 바빠졌다.

발렛팀이 우르르 나가 서는 소리가 들렸다. 발렛 아저씨들의 인사는 항상 깍듯했다. 안에 있으면 밖이 보이지 않는데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 알 수 있었다.

1부 손님은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온다고 했다. 밥을 먹고 오는 사람이 있고, 안 먹고 와서 가게에서 백반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게 이상했다. 이런 데 와서 백반을 먹는구나. 지금 생각하면 그날 본 것 중에 제일 정상적인 장면이었다.

아가씨들은 늘 늦는다고 했다. 그날도 늦었다.

그래서 내 자리가 있는 거였다. 손님은 와 있고 아가씨는 아직인 그 시간. 방을 비워둘 수는 없으니까.

언니가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고쳐 바르며 말했다.

"이제부터 말 줄여."

나는 뭔가 물어보려다가 그만뒀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지킨 지시였다.

일곱 시, 내 첫 방

첫 손님은 일곱 시에 왔다.

그날 그 가게의 첫 손님이었고, 내 첫 방이었다.

밖에서 인사 소리가 나고 잠시 뒤에 문이 열렸다. 나는 인사를 반 박자 늦게 했다. 언니는 문이 열리기 전에 이미 일어나 있었다. 소리를 듣고 있었던 거였다.

그날 밤 내내 나는 반 박자씩 늦었다. 잔이 비는 것도 늦게 봤고, 누가 자리를 뜨려는 것도 늦게 봤다. 언니는 늘 먼저 알았다.

나중에 물어봤다. 어떻게 아느냐고.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거야."

따르지 않는 법

그 방에서 한 번 병에 손을 댔다.

잔이 비어 있었다. 채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배운 게 없으니 눈에 보이는 것을 했다.

언니가 내 손목을 가볍게 눌렀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표정도 그대로였다. 손목에 닿은 힘만 있었다.

그 사람은 막 무슨 말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있었다. 나는 그걸 못 봤다.

그때 잔이 채워지면 말은 삼켜진다. 잔을 드는 동작이 문장을 끊기 때문이다. 사람은 한 번 끊긴 문장을 다시 꺼내지 않는다. 대개는 그걸로 끝이다.

그 사람은 결국 그날 그 말을 했다. 별거 아니었다. 요즘 잠을 잘 못 잔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악만 계속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이 실패인 줄 알았다. 아무도 말을 안 하고 있으니까.

언니는 그 침묵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잔도 안 채우고, 화제도 안 돌리고, 웃지도 않았다. 그냥 같이 있었다.

배운 것은 따르는 기술이 아니었다. 따르지 않아야 하는 순간을 아는 일이었다.

초이스 전, 혼자 들어간 방

열한 시가 넘으니까 방이 한꺼번에 찼다.

언니가 복도에서 나를 붙잡고 말했다. 3번 방에 가 있으라고. 초이스는 조금 걸린다고. 그 말을 하면서 언니는 이미 다른 방 문을 열고 있었다.

문 앞에서 숨을 한 번 골랐다. 반 걸음 앞에 아무도 없는 건 그날 처음이었다.

들어가니까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둘 다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다. 나는 그게 무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재밌게 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재밌게 하는 법은 안 배웠다.

그래서 종이에 있던 걸 했다. 인사를 하고, 커피는 아아로 먼저 시킬까요, 하고 물었다.

한 사람이 그제야 나를 봤다. 그러라고 했다.

폰을 꺼내 단톡방에 카톡을 넣었다. 3번 방 아아 둘. 안 바쁘면 웨이터가 알아서 들어오는데 그 시간엔 다들 바빴다. 보내놓고 나서 손이 조금 떨렸던 것 같다.

잔이 들어왔을 때 그 사람 표정이 반 뼘쯤 풀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그날 내가 처음으로 맞게 한 일이었다.

틀린 이름

그러고 나서 이름을 틀렸다.

두 사람이 비슷한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중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불렀다.

손님은 웃었다. 괜찮다고 했다.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그때 문이 열리고 아가씨들이 들어왔다. 초이스가 끝난 거였다. 내 시간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인사를 하고 나왔고, 병은 끝내 들지 못했다.

복도에서 언니를 만났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언니가 먼저 알았다.

혼내지 않았다. 혼내지 않으니까 더 무서웠다.

한참 뒤에 조용히 말했다.

"틀린 이름으로 부르면, 그 사람이 여기서 어떤 사람인지를 틀리게 만드는 거야."

밖에서 뭐라고 불리든, 이 안에서만은 자기가 고른 이름으로 불리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아아를 맞게 놓고 그 사람을 틀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 말을 그날 밤 내내 생각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아무것도 못 한 하루

문을 닫고 나올 때 언니가 물었다. 오늘 뭐 배웠냐고.

나는 아무것도 못 배웠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병 한 번을 못 들었으니까.

언니가 웃었다. 그날 처음 웃는 걸 봤다.

"그럼 잘 본 거야."

새벽의 도산대로는 조용했다. 들어갈 때보다 더 조용했다. 첫차는 아직이었다.

그날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아 한 잔을 제때 놓은 것과, 이름 하나를 틀린 것뿐이었다. 아무것도 못 한 하루라고 생각했다.

돌아가는 길에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억울해서가 아니라, 내가 뭘 하러 온 건지 그날은 몰라서였다.

지금 보면 그날 배운 걸 아직도 쓰고 있다.

거리라는 건 그런 것이다. 너무 가까우면 사람은 자기 얘기를 못 하고, 너무 멀면 하지 않는다. 그 사이 어디쯤을 매일 다시 찾는 일. 첫날에 배운 건 그거였다.

술 따르는 법은 며칠이면 배운다.
나머지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